<사랑 그리고 희망 - 2011 대한민국 리포트>
“딱한사연에 울컥…40억 충동 기부했죠”
‘사랑·희망 전령사’릴레이 인터뷰- 데뷔 이래 40억 넘게 기부 가수 박상민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4-06 11:51 요즘페이스북구글트위터미투데이
▲ 어려운 이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해온 가수 박상민은 자신의 기부가 ‘원칙이 없다’고 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그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공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에 소개되는 안타까운 사연에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수백만원씩 이체한 적도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이런 기부가 “다 마음이 약해서 하는 일”이라며 웃었다.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어쩌면 이리도 심약하고, 주먹구구식이고, 대책 없이 충동적이기만 한 기부자 가 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낸 기부액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안해봤단다. 이쯤이면 ‘진짜 기부를 하기는 하는 거야’란 생각에 살짝 의심이 들 법도 하다. 연예인의 기부에 대해서는 이를 폄훼하는 시선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인기 연예인이 거액의 기부를 했다면 대번에 ‘인기 관리를 위해서’란 수군거림이 따라오기 쉽다. 거액의 기부금을 놓고는 ‘돈 잘 버는 모양이네’ 따위의 비아냥까지 따라붙는다.
다른 어떤 직업보다 대중적 이미지와 평판이 중요한 탓에, 기업화된 매니지먼트 회사는 대중스타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그 중 가장 좋은 이미지가 ‘선행’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대중스타들의 기부가 자칫 그 의도를 오해받는 것도 다 이런 것 때문이다.
가수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40억원이 넘는 돈을 각계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가수 박상민(47). 그에게서는 그러나 기부를 자신의 이미지로 연결하려는 흔적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우선 그는 ‘얼마나 기부했는가’란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기부 액수를 자랑하겠다면 그동안 냈던 기부금 영수증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그때마다 꺼내 보여주거나, 생색이 날 법한 기관에 기부금을 몰아냈겠지만, 그는 어디다 얼마를 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밝혀진 액수(40억원)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만 했다. 자선공연에 무료 출연한, 이른바 ‘재능기부’ 액수는 다 제외하고 순전히 자기 돈을 낸 액수만 그렇다는 것이다.
“한번도 제가 얼마를 기부했나 헤아려 본 적이 없어요.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최근 5년 동안의 회사 장부를 꺼내놓고 탈세 여부를 조사하던 세무서 직원이 회계서류를 뒤지다가 기부한 액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면서 격려해주시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얼마나 기부했는지 알게 됐지요.”
그때 확인한 5년 동안의 기부액수가 20억원을 넘었다. 그가 기부액수와 기부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부가 그만큼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낯모르는 이를 위한 기부와 딱한 사정의 아는 이들을 위한 도움을 가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기부를 한다. 별다른 계기도 없다. 공연하러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도,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딱한 사연이 나오면 휴대전화를 꺼내 그 자리에서 수백만원을 기부금 통장으로 이체한다. 주위 동료들 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면 망설이지 않고 주머니를 뒤져 잡히는 대로 돈을 건네기도 한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을 돕다 보니 간혹 그게 대가 없는 기부인지, 개인적인 인연의 도움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니 그걸 딱 갈라서 기부액만 따로 헤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제가 좀 심약한 편이에요. 이 나이가 되도록 눈물도 많고요. 누구든 부탁하면 거절을 못한다니까요. 게다가 안타까운 사정을 듣다 보면 왜 그리 마음이 약해지는지…. 어떨 때는 좀 모질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짙은 선글라스와 콧수염, 그리고 터프한 목소리를 대하면 ‘심약한 성격’이라는 말에 좀처럼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이런 그의 성격을 십분 이용한다. 우선 연예계에서 그는 ‘땜빵 가수’로 유명하다. 방송관계자들은 프로그램이나 공연에 어떤 가수가 펑크를 내면 그를 먼저 찾는다.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기관리 좀 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저를 찾았는데 어떻게 그걸 거절해요. 그냥 ‘나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0여년 전쯤 TV 예능프로에 ‘오순이’란 이름의 원숭이와 함께 등장했던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 당시 PD가 ‘원숭이와 함께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고려해보니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어렵게 거절했었다. 그랬더니 PD가 ‘강아지면 어떻겠느냐”며 통사정을 해서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런데 녹화 당일 PD는 정작 강아지 대신 원숭이를 안고 왔고, 그걸 또 거절하지 못해 원숭이와 함께 프로그램을 촬영했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뒀다.
천성적으로 심약한데다 이렇듯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까지 겹쳐 그는 수많은 기부에 동참해왔다. 그가 앞장선 기부의 형태와 종류는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소아암 환자나 난치병 환자들을 돕는 것이야 고전적인 ‘기부’에 속한다. 그는 격투기를 하는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줬는가 하면 한때 위기에 몰렸던 쌍용자동차 돕기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또 아프리카 어린이 20명을 후원하고 있기도 하고, 눈, 간, 심장, 콩팥을 사후기증하기로 약정하기도 했다. 기부로 전달해준 돈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자신의 선행이 나중에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다면 그의 첫 기부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그의 첫 기부는 얼떨결에 충동적으로 이뤄졌다. 데뷔한 지 2년쯤 됐을까. ‘청바지 아가씨’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인기 정상을 달리던 무렵이었다. 고향인 경기 평택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장 인근에 주민들이 손수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장하다 평택의 아들.’ 그 한 줄의 글귀에 그는 울컥했다. 공연은 연일 매진이었다. 어떻게든 고향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그는 평택의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돕기에 거금을 냈다.
그후로 기부는 그에게 일상이 됐다. 누구의 부탁이나 제안을 받지 않아도 딱한 사정을 보면 서슴없이 무대에 서고 주머니를 열어 돈을 낸다. 그렇게 기부를 하다 보니 뿌듯한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소아백혈병을 앓던 초등학생이 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고교생이 돼서 찾아온 일이었다. 그는 “그때는 나 스스로도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기부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면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쉽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그게 바로 정답이다. 그는 너무나도 쉽게 기부를 한다. 딱한 사연을 듣고 마음이 아파서, 오랜 인연을 저버리지 못해서,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심지어 간혹 화가 치밀어서 돈을 낼 때도 있다. 몇해 전 사회 명망가들과 자선 골프대회에 나갔을 때는 내로라 하는 부자들이 기부금 액수를 놓고 눈치를 보는 모습에 어찌나 화가 치밀던지 그 자리에서 500만원을 던지듯이 낸 적도 있다. ‘원칙’만을 내세우며 어려운 주민들의 사정을 보살피지 못하는 관공서의 무신경에 분노해서 기부한 적도 있다.
그는 자신의 기부에는 ‘철학이 없다’고 했다. 유약한 본성에다 덮어놓고 남을 믿어버리는 성격 탓에 가수활동을 해오면서 수십억원이 넘는 사기를 두번이나 당하기도 했다. 그 자신도 아직 전셋집을 면치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는 “박상민이란 상품이 아직 잘 돌아가니까 돈 문제는 그다지 걱정이 없다”고 했다. “기부 연예인으로 소문이 나는 바람에 비싼 집을 사기가 좀 부담스럽겠다”는 질문에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돈이 있으면 왜 못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실 제주도 땅을 사기당해 10억원 이상을 날렸을 때도, 키르기스스탄의 광산사업에 속아 돈을 날렸을 때도 그의 기부는 계속됐다. “이것(자신의 생활)과 그것(타인을 위한 기부)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소망은 오랫동안 무대에 서면서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가수’란 평판을 듣는 것과 동료 연예인들과 재단을 만드는 것 두가지다. 재단을 함께 할 후배 가수도 이미 물색해놨다. 박미경, 유리상자, 홍경민…. 인터뷰를 마치고 ‘언제 마음 편히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한다”고 했다. 담배는 아예 배우지 도 않았단다. 고교 졸업 직후부터 나이트클럽과 룸살롱, 고고장을 전전하며 밤무대에 섰고, 이른바 ‘그쪽 바닥’의 사람들이 대개 무절제한 생활을 하기 십상이라고 보면 이런 그의 모습은 의외다. 극구 부인하며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술과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겁 많고 유약한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마음이 약하다’는 뜻이 어찌 보면 ‘선하다’는 것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말임을, 그의 모습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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