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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4, 2010

북한, 동독보다 낙후돼 남북통일이 독일에 비해 돈·고통 더 요구할 것

[Weekly BIZ] "북한, 동독보다 낙후돼 남북통일이 독일에 비해 돈·고통 더 요구할 것"
배성규 기자 vegaa@chosun.com ▶ |
입력 : 2010.12.04 03:06


'독일 통일 컨설팅' 롤랜드 버거社 랄프 칼름바흐 전략 담당 사장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정치·외교적으로는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통일이라는 긴 과제에 대해선 지속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북통일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무척 힘든 과정이 될 거예요. 북한은 동독과 달리 산업 생산 능력도 경쟁력도 없기 때문에 북한의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독일계의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롤랜드 버거(Roland Berger)의 랄프 칼름바흐(Kalmbach) 전략 담당 사장은 남북통일이 독일에 비해 훨씬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롤랜드 버거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독(統獨)되는 과정에서 독일 정부를 상대로 '통일 컨설팅'을 했던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다. 민간 기업이지만 통일 과정의 경제적 문제점과 전략, 비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중국 내 2위 컨설팅업체로 폭넓은 영업망을 갖고 있어 북한에 대한 정보도 수시로 접한다고 했다. 한국지사 출범에 맞춰 방한한 그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통일 전 동·서독의 관계는 현재 남북 관계보다 훨씬 우호적이었고 통일을 준비할 시간도 더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급작스럽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니 체계적으로 통일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정치적 목적에 의한 동·서독 화폐 통합과 공기업 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통일 초기엔 5~6년이면 동독 지역의 산업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동독의 경쟁력은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죠. 수천억 유로의 세금이 동독에 투자됐고, 앞으로도 엄청난 돈이 계속 투자돼야 합니다."

그는 전반적 여건이 훨씬 나쁜 남·북한이 준비 없이 급작스러운 통일을 맞을 경우 그 혼란과 경제적 손실은 훨씬 더 클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20년간 통일 비용으로 모두 1조6000억유로(2400조원)를 썼다. 남·북한의 통일 비용은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통일이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통일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향후 30년간 2525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가정하에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는 5800조원으로 추정했다. 남·북간 소득 격차가 동·서독에 비해 10배 가까이 크고, 교육 등 공공서비스와 인프라 건설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프라와 공기업 처리 등 경제 문제를 해결할 마스터 플랜을 설계해야 한다"며 "한국 기업들도 통일 이후 대북 투자전략과 사업 모델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 허무는 것보다 화폐통합이 더 고통스러웠다"

"경제 여건상 北의 3대 세습 오래 못 갈 것"

독일 통일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칼름바흐 사장은 "동·서독 화폐통합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롤랜드 버거는 화폐통합 및 동독 공기업 처리 과정에서 대정부 컨설팅을 했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 화폐의 실질적 가치는 10배가량 차이가 났어요. 그런데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양측 화폐를 1대1로 교환하는 방식을 채택했어요. 이로 인해 수많은 동독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고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동독의 화폐 가치가 10배나 평가절상되면서 동독 기업들이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줄파산 사태에 직면한 동독 기업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졌다. 롤랜드버거는 동독 기업에 대한 평가 작업을 통해 생존이 가능한 기업과 불가능한 기업들을 구분했다. 생존 기업에 대해선 새로운 경영 관리 시스템과 운영 기법 등을 제공했다. 그러나 45년간 공산주의 체제로 인해 동독의 모든 기업은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동독 지역의 사회 인프라와 산업 생산력 복구에 막대한 비용이 투자됐다. 화폐 전환 비용, 통일 후 동독 실업자에 대한 구제 비용 등 통일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일부 동독 지역은 실업률이 50%를 넘기기도 했다.

칼름바흐 사장은 "경제적 관점이나 기업 경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행된 화폐 개혁이나 경제 통합 조치가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전 준비 부족으로 동독의 부실 공기업의 정리와 회생 절차가 지연된 것도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나 운영체제 구축만으로는 수십년간의 공산주의식 기업 운영에 따른 근본적 비효율성을 고치기가 힘들었다.

그는 남북한 경제 통합은 더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현재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 전무하고, 자체 생산 능력도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 경제는 매우 작고 낙후돼 있습니다. 과거 동독보다 훨씬 심각하죠. 북한은 자체적으로 통일 이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한국은 북한에 일정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사회 인프라와 산업 기반을 구축해 줘야 합니다.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북한 지역의 인력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 지역에서 산업 생산에 종사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시민들이 동·서독을 가로 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을 망치과 곡괭이로 허물고 있다. 하지만 45년간 벌어진 동₩서독 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일은 장벽을 부수는 것과 달리 결코 쉽지 않았다. /조선일보 DB 그러나 그는 한국 기업에는 통일이 위기가 아닌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봤다. "기업에 추가적인 시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비록 통일 시점에선 구매력이 거의 없겠지만요. 한국 기업에 가장 큰 혜택은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기회가 온다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높아지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효과를 누리려면 기업들의 사전 준비와 전략적 투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의 낙후된 인프라와 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기업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북한에 투자할 준비가 된 기업만이 눈앞의 기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 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북한의 경제적 여건으로 볼 때 김정일 체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봅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권력을 넘기려 하고 있지만, 아들의 힘은 약해서 더이상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요. 북한 내부 상태가 점점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에 군주 체제는 조만간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이번 연평도 포격 사태가 한국 경제에 우려했던 수준의 악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평가했다. "북핵 위기 등 유사한 정치·군사적 위기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에 한국 및 외국 투자자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위기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주식시장은 물론 한국 기업의 수출이나 금융 거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제조업 강한 韓·中·獨이 최후 승자"

화제를 비즈니스 분야로 돌렸다.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는데 변화의 키워드가 무엇입니까?

"미국과 유럽 중심의 기존 정치 질서가 붕괴되고 아시아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는 방향입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중국·인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 구심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는 주로 동부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현재 기업들은 인력 확보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 내륙과 남부 지방에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중국 정부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추가적 산업화는 중국 전체의 GDP 증대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나 동부 해안 지역은 인건비 증가와 환경 규제 강화로 경쟁력이 약화될 거예요. 이미 섬유업 같은 업종은 '탈(脫)중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생산 거점이 이동하고 있죠. 대안적 투자처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이 부상하면서 과거 중국에 집중됐던 글로벌 투자 자본이 아시아로 분산될 것입니다. 즉 중국의 산업 발전은 지속되겠지만, 그 속도는 떨어질 겁니다."

그는 중국 기업이 다양한 시장의 니즈를 반영하고 제품을 차별화하는 단계로는 못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저가(低價) 경쟁력이지 글로벌 시장에서 고객의 니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역량은 없습니다. 사업가적 마인드나 인적 역량, 교육 체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중국 기업은 전환 과정에서 일정 기간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 경제를 능가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 경제를 압도할 것입니다. 금융 및 서비스 산업 중심인 미국은 현재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구조적 약점을 지녔습니다. 반면 중국은 제조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아시아·남미 기업의 경쟁력을 미국 기업이 따라잡기는 힘들 겁니다."

세계 각국과 기업들 간의 무한경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제조업 중심 모델을 가진 한국과 중국, 독일 기업들이 서비스 중심 모델을 가진 나라들의 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할 것입니다. IT와 엔지니어링, 건설 등 분야를 보면, 한국과 독일 기업의 경쟁력이 우수합니다. 중국은 몇 년간 성장이 보장돼 있지만,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국과 일본 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과 일본 기업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미국은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대부분 제조업체들이 미국을 떠났고, 현재 미국의 경쟁력 있는 제조업체는 GE와 보잉, 캐터필러를 비롯한 방위산업체와 IBM·HP 등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미국 기업은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기업은 대규모 투자와 품질 향상에 기초한 원가 경쟁력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전략을 가진 신흥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력과 품질 우월성을 상실했어요. 고객 니즈에 맞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지도 못합니다. 소니는 한때 제품 혁신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는데, 지금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 기업은 특이하게도 고객 니즈에 따른 품질 향상 및 솔루션 제공 능력을 갖춘 동시에,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아닌, 오너가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경영함으로써 높은 시장 점유율 및 품질 향상이라는 현재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중장기적 성장 원칙이 바로 한국 기업의 강점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한국은 미국·일본·독일과는 기술·품질 측면에서, 중국과는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 샌드위치의 상황인데요.

"한국의 상황은 독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독일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 기술·제품개발·핵심부품 생산은 독일 내에서 하는 반면, 단순 조립 등의 비핵심 기능은 동유럽이나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로 거점을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독일처럼 글로벌 거점 최적화 전략을 적절히 실행한다면, 샌드위치 상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년 한·EU FTA가 발효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한국은 전자·중공업 등 분야에서 매우 강력한 기업들이 있어요. 관세 장벽이 없어지면 이들의 유럽 수출이 크게 늘 겁니다. 특히 경쟁력을 갖춘 소비자 제품 기업들이 혜택을 볼 것입니다. 다만 유럽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국가별로 다양한 고객의 니즈와 마케팅 전략, 물류시스템 등에 대한 이해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곧바로 "다음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인터뷰 4시간 전에 입국한 그는 오전에 국내 대기업 2곳을 방문했고, 이날 총 9차례의 비즈니스 미팅이 있다고 했다. 그의 비서는 약속 시간과 장소, 이동시간과 거리 등이 입체적으로 그려진 독특한 일정표를 들고 다녔다. 이렇게 관리해야 타이트한 일정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롤랜드 버거는
세계 5위의 컨설팅 업체… 글로벌 기업 1000여곳 고객

롤랜드 버거는 세계 5위이자 유럽의 대표적 컨설팅 업체이다. 화이자·메르세데스-벤츠·네슬레·3M·UBS를 포함해 전 세계에 1000여개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롤랜드 버거는 최근 세계적 회계·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와의 합병 논의로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주주총회에서 부결됐다. 칼름바흐 사장은 마틴 위티그(Wittig) 최고경영자(CEO)에 이은 사내 2인자다.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는 스타일로 두세 차례나 큰 소리로 "옙(yep)"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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