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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20, 2011

뉴욕에선 가능하지만, 서울에선 힘들다

[서평] 어느 건축학자의 도발적 주장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11.08.10 11:16 ㅣ최종 업데이트 11.08.10 11:16 김종성 (sunny21)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 건축학자 이경훈 지음
ⓒ 푸른숲
서울은도시가아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게는 두 가지의 길이 펼쳐져 있다. 하나는 차도로 이어진 퇴근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전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20여분의 길이다. 같은 퇴근 길이지만 풍경은 전혀 다르다. 차를 타고 가는 길은 말그대로 사무실에서 집 주차장까지 직진하듯 가거나 심심할 땐 중간 정도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르기도 하는 길이다.

반면 두 번째 퇴근 길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거리의 길이다. 대기업의 편의점들도 많이 있지만 주로 동네의 소규모 상점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슈퍼에 들러 주인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며 두부를 사기도 하고 반찬가게의 주인 아주머니와 서로 안부를 물어 보기도 한다. 이외에도 DVD·책 대여점, 세탁소, 떡집, 전파상, 철물점··· 이 길 양옆으로 쭉 늘어서 있어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고 마음이 푸근해지곤 한다.

건축학자이자 교수인 이경훈이 쓴 책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진정한 도시의 모습은 위의 두 번째 길이며 거리라고 말한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니 도발적이기까지 한 제목의 책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대표 도시 서울을 매력 없고 불편하고 삭막하다고 느끼게 하는 데에는 역설적으로 '쾌적함'과 '자연'이 그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은 내 상식을 되짚어보게 하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인도에 주차를 하는 야만적인 행위부터 규제하는 것이 디자인 거리 조성의 첫걸음'이라는 말에 속으로 '옳소!'하는 외침이 절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거리는 어떻게 우리를 걷게 만드는가

(중략) 무엇이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도시를 걷게 하는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여기에 나무를 더 심고 벤치를 놓아서일까? 정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진정 도시를 걷게 만드는 것은 상점이다. 거리에 빠짐없이 채워진 상점 쇼윈도는 도시 생활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상점은 거리의 활력일 뿐 아니라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이며 보안등이자, 거리의 청결함과 쾌적함을 감시하는 거리의 파수꾼이다. 보행자들에게 볼거리와 잔재미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거대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 본문 가운데

뉴욕이 로망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데에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 명의 전문직 여성들의 흥미로운 뉴욕 라이프스타일은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으며 영화로도 두 편이나 제작됐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들이 계속 걷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변의 변호사, CEO들 마저도. 게다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유명 브랜드 쇼핑에 탐닉하는 이른바 '된장녀'들이지만 아무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을 유혹하는 남자들 마저도. 영화속에 등장하는 교통수단이라곤 택시와 두 발로 걷는 것뿐이다. 애써 차려입은 주인공 캐리는 고가의 구두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걷는다.

서울은 '둘레길'이나 '성곽길'처럼 걷고 싶은 길은 많지만 정작 도시안에서 걷게 하는 거리는 드물다. 서울시와 지차체에서 만들어 놓은 '걷고 싶은 거리'들 마저도 대부분 산책이나 운동을 위한 걷고 싶은 길일 뿐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도시인을 걷게 만드는 걷고 싶은 거리는 공원이나 벤치를 들여 놓은 길이 아니라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선 곳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구경거리가 있는 길로서의 거리가 도시를 살린다는 것이다.

하긴 사진이나 영화 속 노천 카페의 낭만은 모두 거리가 낳은 것이다. 그런 거리가 있는 도시는 활기가 있다. 따라서 도시가 삭막하다는 것은 거리가 삭막하다는 뜻이겠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넉넉한 주차장과 쾌적한 공원이 없는 신사동 가로수길은 도시의 거리가 지닌 기본적인 역할과 그로써 형성된 도시적 공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진정한 거리라고 말한다.

건축은 사회의, 시대의 거울

가장 도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서울에서는 오히려 도시를 해치는 주범이 되었다. 이은 아이러니이자 한국 도시의 최대 불행이다. 모든 세대가 남향일 것을 요구하고, 울창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며, 방음벽으로 도로와 차단돼 고요한 환경이기를 원한다. 도시의 문화적 경제적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도시의 번잡함은 멀리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가 주거와 도시를 모두 망치고 있다 - 본문 가운데

새집증후군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라고 한다. 빨리빨리 짓다 보니 본드와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을 쓰게 되고 그 결과 새로 만든 집에는 유해한 독소가 많이 발생해 거주하는 사람들이 여러 질환에 시달리게 되버렸다. 이러한 병적 증후는 더욱 심각한 병리 현상으로 발전해, 서울의 전체 건물 절반 이상이 지은 지 20년을 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렇게 한국의 집짓기는 끼워 맞추고 조립하는 정교함이 요구되는 건식 기술보다, 시공이 간편하고 무엇보다도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습식 시공법을 채택한다. 공업용 강력 본드같은 접착제로 마루부터 화려한 인테리어까지 하는 바람에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를 병들게 했다는 것.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서울에 오래된 건물이 없는 것은 사회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이런 공법의 건축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늬만 건축이 서울을 유례없이 어린 도시로 만든 것이다. 6백년 역사의 도시 서울이라고 하지만 백 년은 커녕 50년 된 건물도 드문 현실이다. 어릴 적 살던 집은 헐려서 아파트로 다시 태어났고, 젊은 시절의 추억이 통째로 담겨 있던 동네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을 보건대 문제는 50년 후에도 자명하다.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 세대처럼 어릴적 기억이 말소된 '장소와 추억 상실의 도시'를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엽서의 한 장면이 연출되는 유럽의 도시와 달리 서울은 어째서 항상 공사 중일까? 왜 나의 도시 생활은 항상 지치고 피곤하기만 한 걸까? 저자는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서울에 더 많은 가로수길을 만드는 것이다 라고 외친다. 벤치가 없어도 좋고, 작은 공원이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 대신 모든 길에 인도를 만들고 자동차가 올라오지 않도록 한다. 유모차도 지나다닐 수 있는 가로수길과 같은 '우리 동네'에서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는 삶을 꿈꾼다. 진정으로 걷고 싶은 거리,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를 말이다. 동감이다, 그런 도시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람들을 위로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퇴근 길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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