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

Friday, March 25, 2011

"부동산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에만 빠진 집권층

[송희영 칼럼] 부동산으로 재미 보려는 政治
베이비 붐 세대 700만명, 은퇴 본격화하는데 "부동산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에만 빠진 집권층
신도시·뉴타운 팔아 선거운동하려는 망상 버려야…

며칠 전 무너진 LIG건설을 보면 동정심조차 생기지 않는다. 재벌 그룹 모양새를 갖춘답시고 건설회사를 인수했다. '100% 분양 완료'를 자랑하던 경기도 용인·김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 설계도를 그릴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을 것이다.

유독 이 회사가 운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무능했던 탓도 아니다. "수도권 인기 지역에 LIG브랜드까지 붙였는데 설마 미분양이라니…"라고 했겠지만, 용인에서 미분양이 남았고 김포 사업은 중단됐다. 효성그룹도 2년 전 건설회사를 인수했다가 똑같은 좌절을 맛봤다. 그들은 부동산 불황(不況)의 기나긴 터널을 보지 못했다.

효 성·LIG만 오판한 게 아니다. 도지사와 시장·군수들도 잘못 봤고, 청와대와 경제부처 장관들도 그랬다. 몇 분만 참고 달리면 부동산 불황의 터널 끝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아파트 건설과 토목공사에 정통한 대통령을 모셨으니 터널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면 부양책으로 끝장낸다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정부는 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건설업자들 아우성을 받아들여 대출 규제를 풀어주고 미분양 아파트도 사줬다. 은행 대출금도 탕감해줬다. 하지만 암흑의 미로(迷路)는 너무 길고, 어쩌다 잠깐 햇빛이 들어오다가 다시 어둠 속에 빨려들어갈 줄은 몰랐다.

이제 와서 도지사·시장들은 뉴타운 사업이 굴러가지 않아 민란(民亂)이 날 것이라고 정부와 국회를 돌며 압박한다. 잡초만 우거진 신도시와 베드타운이 이곳저곳에서 취소된다. 경기도 파주·탕평에서는 호화 청사진을 믿고 은행 돈 대출받아 땅을 샀던 투자자들이 이자 덤터기에 짓눌려 정부를 원망하다 못해 소송에 들어갈 조짐이다.

그 러고도 정부는 며칠 전 또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부활해 은행대출을 억제하는 듯하지만, 크게 보면 다시 불을 때 보겠다는 부양책이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중형(中型)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야 한나라당이 당선된다"거나 "뉴타운이 취소되면 정권 재창출은 절망이다"며 의원들은 정부·지자체, 토지주택공사를 상대로 협박과 설득에 바빠졌다.

과 거에는 부동산 경기를 점치는 족집게 전문가가 시장에서 나왔다. 지금은 노벨상을 탔거나 탈 만한 경제학자들이 부동산 시장을 연구한다. 부동산이 금융위기의 출발점이 되고 저금리가 부동산 버블을 몰고 오는 일이 어느 나라에서나 늘 발생하기 때문이다.

경제학도의 필독 원론서를 써낸 하버드대 맨큐(Mankiw)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가 주택값 하락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벌써 예측했었다. 그 후 미국 집값이 줄곧 올라 맨큐는 물정 모르는 학자로 조롱받았다. 하지만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길게 보면 인구구조 변화가 주택 가격에 미치는 파장이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됐다.

부 동산을 선거판 흥행 재료로 삼으려는 정치인은 우리나라가 딱 그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알아야 한다. 몇 년새 베이비붐 세대 710여만명의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다. 생산인구는 앞으로 4~5년 후 꼭짓점을 찍고 줄곧 내리막길을 달려가도록 되어 있다.

아 파트 시장에 손님이 줄어든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20~30대 중 실질적인 비정규직 근로자가 40% 이상으로 추정된다. 월수입 120여만원으로 끼니 때우고 아이 키우기조차 힘든 판에 내집 마련의 꿈을 꾸기란 불가능하다. 주택 보유 의욕이 충만한 투자층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천안함 폭침의 진실이 뭐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부류가 좌파 진보 집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청와대·한나라당, 건설업계에 훨씬 많은 숫자가 '부동산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에 빠져 있다. 일본처럼 20여년 내내 침체할 수 있다는 현실을 도무지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1995년 생산인구 감소가 시작되기 4~5년 전부터 부동산 값이 폭락했다.

정치인들은 신도시·뉴타운을 팔아 선거에서 이기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부동산 개발 계획을 잘못 띄웠다가 역적이 될 수도 있다. 유권자들도 어설픈 부동산 공약을 들고 나오는 정치인을 보면 사기성(詐欺性)을 의심하고 볼 일이다.

정부도 부동산으로 성장을 부추기려는 정책과 결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서서히 내리도록 할 것이냐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급히 하락하면 충격이 닥칠 수 있으므로 하강 속도 조절이 중요해졌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