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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23, 2011

미국인 사로잡는 한류

[지구촌 ‘한류 실핏줄’ 흐른다]<2> 미국인 사로잡는 한류
기사입력 2011-06-24 03:00:00

지고지순 한드, 냉철 미드를 위협하다

‘최고의 사랑’ 영문자막으로 보고… 2NE1 따라부르기 동영상 인기 미국의 한류 팬들은 영문 사이트를 이용해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실시간으로 즐긴다. 최근 화제작인 MBC ‘최고의 사랑’은 ‘Greatest Love’로 번역돼 한드 사이트 ‘드라마피버’에 영문 자막과 함께 게시됐다. 현지 팬들이 매긴 별점이 5점에 가깝다. 오른쪽은 한류 사이트 ‘숨피’의 화면으로 ‘2NE1의 론리(Lonely) 따라 부르기 대회’에 참가한 현지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계미래학회장을 지낸 미래학계의 석학 짐 데이토 하와이대 교수는 ‘한드(한국 드라마)’ 마니아다. 최근에는 영어자막이 담긴 동영상 사이트에서 KBS ‘소문난 칠공주’를 한 편도 빼지 않고 모두 보았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꿈과 상상이 지배하는 미래 드림 소사이어티를 이끌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사회에 파고드는 한국 대중문화를 단순한 호사가들의 취미 수준이 아니라 산업 전반을 뒤흔들 미래산업으로 보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것이다.

9일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버스 안에서 기자는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40대 백인 여성이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매일 저녁 한국 드라마 보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그는 “한국 남자들이 너무 멋있다. 얼마 전 이혼했는데 재혼하면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정도(웃음)”라고 했다.

미국에서 ‘한드’는 드라마의 본산 ‘미드(미국 드라마)’를 파고드는 유일한 외국 드라마다. ‘한드’가 ‘미드’ 사령부를 공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 등 다른 나라의 한류처럼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이 크다.

NBC방송과 폭스가 합작해 설립한 미국 내 대표 동영상 사이트 중 하나인 ‘훌루닷컴(hulu.com)’. 유튜브 아성을 위협할 정도인 이 사이트 초기화면에는 며칠 전 SBS 드라마 ‘나쁜 남자’가 올라왔다. 이 사이트는 총 24개에 이르는 액션, 코미디, 드라마, 음악, 스포츠, 리얼리티쇼 등을 운영하는데 ‘한드’의 경우 영어 자막 서비스를 하고 있다.

조회수 30만 건을 기록한 ‘시크릿 가든’ 애청자라고 밝힌 앤 그니트 씨는 “한국 드라마는 진짜 중독성이 있다…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붓고 (눈물 콧물을 닦은) 티슈를 여기 저기 던져가며 드라마를 보기는 처음”이라는 평을 올렸다.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고 다음 학기부터 미시간대 영화학과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강의하는 이상준 박사는 “‘한드’ 시청자층은 30∼50대 백인 여성, 흑인과 히스패닉 등 다양하다”며 “필라델피아 인근 배용준 팬클럽 회원인 30, 40대 백인 여성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범죄, 의학, 수사, 코미디 중심인 미드와는 달리 지고지순한 사랑과 가족 중심의 내용인 한드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유명 여배우가 한국산 화장품 쓰고…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 시에나 밀러가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피해 ‘아모레퍼시픽’ 쇼핑 봉투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 이 사진을 계기로 시에나 밀러가 한국 화장품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뒀다. 동아일보DB
미국은 드라마뿐 아니라 음악 패션 게임 음식 등 대중문화의 최첨단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미국에서 한국은 전 장르에 걸쳐 놀랄 정도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뉴욕의 공연장이나 거대한 이벤트 차원을 넘어서서 평범한 미국시민들의 일상의 실핏줄 속에 코리아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케이팝(K-pop·한국 대중음악)’의 약진은 눈부시다. 1960년대 비틀스를 선봉장으로 한 영국 대중음악의 미국 시장 진출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충격을 던졌듯이 이제 ‘코리안 인베이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김준희 로스앤젤레스 CK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는 “올 초 미국 친구를 집에 초대했는데 2PM의 ‘I’ll be back’이 나오자 벌떡 일어나 춤 동작을 따라하고 몇 소절은 아예 한국어로 부르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2월 미국 블룸버그는 ‘케이팝이 왜 한국 산업의 가장 잠재력 있는 무기가 됐나’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삼성 현대 LG는 한국 최대의 수출 브랜드지만 실질적인 파워 브랜드는 보아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케이팝 가수”라고 했다.

미국인들의 한국 대중문화 소비는 여성들의 ‘화장 한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검색창에 ‘Korean makeup’ ‘Korean skincare’ 등을 치면 ‘구하라(아이돌 그룹 카라의 멤버) 눈화장법’ ‘김연아(피겨 스케이터) 화장법’ 등 한국 여성 화장법 배우기 관련 동영상이 수천 건 올라 있다. 금발 소녀 마리사가 올린 ‘한국 화장법의 비밀(Korean beauty secret)’이란 제목의 10분짜리 동영상은 9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할리우드 패션 아이콘 여배우 시에나 밀러는 한국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 쇼핑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게임 한류’도 눈부시다. 지난해 말 현재 미국 내 인기 있는 온라임 게임 상위 15위권에는 엔씨소프트 아이온과 길드워,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등 한국 게임이 9개(60%)나 포진했다.

‘미국 한류’는 미디어의 관심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최근 뉴욕한국문화원이 1979∼2009년 30년간 뉴욕타임스 한국 문화 관련 보도(영화 음악 예술 한식 라이프스타일)를 분석한 결과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을 제외하고 매년 30건 안팎에 그치다 2005년 55건, 2006년 88건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2007년과 2008년 각 105건, 2009년 108건으로 급증했다.

최첨단 문화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는 미국에 한국이 ‘먹히는’ 이유는 뭘까. 로스앤젤레스 일대의 대학교수, 컴퓨터 엔지니어,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만화가 등 20∼40대 전문직 7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한류 서퍼스(한류 체험탐험대)’ 회장 샤론 앨러슨 씨(이스트로스앤젤레스대 영문학부 부학장)는 “한류가 미국에서 통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가치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이재성 상무는 “게임 한류가 성공한 것도 한국적인 특징을 강조하기보다 누구나 즐기는 보편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분석들은 최근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로 화제가 된 소설가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가 일으킨 ‘문학 한류’와도 맥이 닿아 있다. 1970년대부터 한국문학을 번역 소개하며 미국인 제자들을 길러낸 하와이주립대 한국학연구센터 김영희 소장(동아시아학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 중엔 한국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안다 해도 ‘분단’ ‘전쟁’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성공한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고민도 미국의 고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여 곳에 불과했던 한국어 개설 대학은 현재 커뮤니티칼리지(전문대학)까지 합쳐 140여 곳에 달하고 한국 문학을 개설한 대학도 17, 18개에 이른다.

한국식 생활문화도 미국인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워싱턴 주재 유럽국가 대사인 A 씨는 워싱턴 근교인 버지니아 주 센터빌에 있는 한국식 찜질방을 일주일에 평균 두 번꼴로 찾는다. 대중탕에서 발가벗고 몸을 담그는 게 서양식 문화로는 낯설었지만 한두 번 다녀 보다 ‘목욕 마니아’가 됐다. 이 찜질방 입장객의 40% 정도는 한국인이 아니다.

미국 내 한국의 관심은 국내 글로벌 기업과 재미 한국인들의 선전으로 한국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퀸스대 민병갑 교수(사회학과)는 “1970, 80년대 일본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본문화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럭셔리하고 모던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스시’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국력과 비례한다”고 말한다.

짐 데이토 교수는 “미국에 부는 한류는 결국 한국의 국위가 올라갔다는 증거”라며 “디즈니사 캐릭터 ‘미키마우스’와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 ‘헬로 키티’를 사면서 소비자들은 각 캐릭터의 정체성도 함께 소비한다. 한류는 결국 한국의 정신문화를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문화산업으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영어권 한류 가이드는 ‘숨피’ 사이트 ▼

미국 한류 팬들에게 현지 언론이 전하는 한류 소식은 감질날 수밖에 없다. 이 수요를 노리고 등장한 것이 한류 전문 웹 사이트들이다. 영어권 한류 팬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사이트는 ‘숨피(soompi)’다. 숨피는 1998년 재미교포 수진 강 씨가 한국 드라마 전문 사이트로 개설했다. 지금은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매월 약 700만 명이 방문한다. 그중 30%가량이 미국 접속자들이다.

숨피에 들어가면 ‘시티헌터 이민호 극중 데이트 장면 공개’ ‘2NE1 신곡 내가 제일 잘나가 프리뷰’ 등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관련 소식들, 음반 리뷰, 이용자들이 올린 콘텐츠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드라마의 경우 동영상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숨피 직원들은 실시간으로 드라마의 동영상을 보며 캡처하고 대사와 상황을 써서 사이트에 올린다. “저 장면 볼 때 죽을 뻔했다. 다음 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Allichan93)거나 “시티헌터와 사랑에 빠졌다”(Candace415)는 식의 댓글들이 무수하다.

한국 문화가 낯선 미국 누리꾼들은 “영의정이 무슨 뜻?” “맞선이 뭔가?”라는 질문을 올리기도 한다. 여기에 답을 달아주는 것도 숨피 직원들의 일이다. 가수들은 사이트를 통해 음반 홍보 활동도 한다. 올 3월 빅뱅은 미니앨범을 발표하면서 ‘빅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주세요’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팬들은 빅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담은 1000여 개의 동영상과 그림파일을 업로드했고, 빅뱅 멤버들은 이 중 수상작을 선정해 수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소녀시대 티파니와 제시카, 걸그룹 달샤벳과의 독점 인터뷰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현재 숨피 직원은 13명. 앞으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사이트도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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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한류 특별취재팀 ::

호놀룰루=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워싱턴=최영해, 정미경 특파원
뉴욕=신치영 특파원
강은지, 민병선, 하태원 기자

2 comments:

  1. 미국에서의 한류가 이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한국드라마 열심히 보는 미국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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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기에 사는 우리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류가 이 땅에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운 것은 이러한 미국인들이 이 땅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인식과, 한국에 사는 코리안에 대한 인식에 미묘한 차이를 느낄 때입니다. 한국의 코리안들의 당당한하고 저돌적인 태도와 이 땅에 사는 극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지는 태도에 나 스스로도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2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고민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급작스런 변화가 미국 금융 위기 이 후에 생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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